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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개관) Introduce |
랴오닝성은 1929년 장쉐량이 동북지역의 군정을 맡으면서 ‘랴오허지역의 영구적인 안녕’이라는 의미로 ‘랴오닝’이라 칭하기 시작했다. 1954년에 랴오시성[遼西省]과 랴오둥성[遼東省] 일부의 합병으로 랴오닝성이 성립되고, 1956년에 러허성[熱河省]의 동부를 병합했다.
중국 동북의 남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남동쪽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접해 있고, 북동쪽은 지린성, 북서쪽은 네이멍구자치구와 허베이성, 남서쪽은 황해·보하이해와 맞닿아 있다. 이는 서부의 요서주랑을 형성하는 구룽지대, 중부의 평원, 동부의 산지 세 지역으로 구분된다. 서부의 구릉지대는 주로 누루얼후 산지이다. 동부는 랴오닝의 주요 산림지구이다. 서부 산지로부터 동부 산지 사이인 중부에는 린하이평원이 위치하고 있다. 중국의 주요 농업 지역이자 식량기지의 역할을 한다.
2012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랴오닝성의 상주인구수는 4,389만 명으로 총인구의 3.26%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성급 행정구 중 14위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그중 성진 인구가 2,881만 5천 명이며 향촌인은 1,507만 5천 명이었다. 당해 출생 인구는 27만 명이었고 출생률은 6.15%인 반면, 사망 인구는28만 7천명이고 사망률은 6.54%이다. 인구의 자연증가율은 -0.39%인 것이다.
랴오닝성은 중국에서 소수민족 인구가 비교적 많은 성 중의 하나이다. 한족이외에 만주족, 몽골족, 회족, 조선족, 석백족 등 44개의 민족이 이 지역에 함께 살고 있다. 소수민족 인구수는 670만 명으로, 성 전체의 16%를 차지하고 중국에서는 10위를 차지한다. 그중에 1만 명을 초과하는 소수민족은 만주족, 몽골족, 회족, 조선족, 시보족 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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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와 환경 Geography & Environment |
온대형 계절풍 기후에 속해 겨울이 길고 여름은 온난하며 봄과 가을이 짧다. 일조량이 풍부하고, 평균 온도가 비교적 높다. 총 연평균 기온은 7~11℃ 사이이다. 동쪽은 습하고 서쪽은 건조하다. 계절풍의 영향으로 각지의 차이가 크다. 동북지역 최대의 강수량으로 동부 산지의 구룽지역은 연강수량이 1,100㎜ 이상이다. 서부 산지 구룽지역은 성 전체 최소 강수량으로 400㎜ 정도이다. 중부 평원의 강수량은 600㎜ 정도이다.
랴오닝성에 철광, 붕소, 마그네사이트, 용매 등이 중국에서 제일 많이 매장되어 있다. 다이아몬드, 활석, 옥석 등은 중국에서 두 번째로 많이 매장되어 있다. 랴오닝 중남부의 선양지역은 광물자원이 풍부하여 중공업이 발전하는데 우수한 선결조건을 갖추었다. 제철에 필요한 부원료들도 매장되어 있다. 그 밖에 망간, 석유, 천연가스, 오일 셰일, 몰리브덴, 마그네사이트, 금강석 등이 중국에서 상당한 매장량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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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와 문화 History & Culture |
진한 시기에 랴오닝둥군과 랴오닝시군을 설치했고 후에 요좌라고도 불렸다. 원래 요동에는 예맥이라는 종족이 살았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산동반도의 제나라와 발해만을 건너 고조선과 교역을 했다. 기원전 300년경 전국시대 중기에는 연나라가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고조선을 공략하고 땅을 정복했다. 이후 요동에서 일어난 최초의 세력인 고조선은 한반도로 후퇴하고, 요동은 연의 차지가 된다. 이후 대체로 중국을 통일한 진과 한에 이르기까지 계승되었다. 한무제는 기원전 108년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군현을 설치함으로써 영토를 더 확장하였다. 이후 고구려 등 토착세력의 발흥으로 인해 약간 퇴축했으나, 요동 일대의 한의 군현들(요동군, 현도군 등)은 존속하였다.
고구려의 광개토왕이 후연과 대결하여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둔 뒤, 고구려는 약 300년간 요동 일대를 지배하였다. 환런 만주자치구에 위치한 오녀산성은 고구려 건국의 성지로 첫 수도인 졸본성의 터로 추정된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당나라는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두어 지배하려 하였다. 그러나 유민들의 저항과 신라와의 전쟁으로 인해 안동도호부는 요동지역으로 후퇴하게 된다. 당나라는 요동 일대를 직접 지배할 여건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구려의 왕족을 왕으로 봉하고 ‘소고구려국’이라는 속국으로 두어 요동을 간접 지배했다고 알려져 있다. 동만주 일대에서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하는 발해가 일어나 고구려의 옛 땅을 수복하였다. 안사의 난으로 당이 혼란한 사이 발해는 소고구려국을 합병하면서 요동을 장악하게 된다.
명나라 시기에는 리청량이 랴오둥지역을 관리하였다. 누르하치는 1616년에 나라를 세워 국호를 ‘대금’이라 하였다. 1618년 누르하치는 ‘칠대한’을 공표하고 군대를 일으켜 명을 공격했다. 1625년 청 태조 누르하치가 선양을 후금의 도읍지로 삼고, 1636년 홍타이지는 이곳에서 국호를 ‘청’으로 바꾸었다. 세 번제 황제인 순치제가 1644년 리쯔청의 난을 기회로 삼아 산하이관을 넘어 명의 수도였던 베이징을 점령하고 중국 대륙을 정복하였다.
청나라 멸망 이후 요동지역은 군벌들이 할거하는 형세가 지속되었다. 그 후 1931년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여 만주국을 세우면서 일본의 세력권으로 존속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한 후 만주국은 다시 중국의 영토로 귀속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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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와 행정 Politics & Administration |
랴오닝성의 행정구역은 2013년 기준으로 2개의 부성급시와 14개의 지급시로 나뉜다. 14개의 지급 행정구역은 다시 100개의 현급 행정구역(56개의 시할구와 17개의 현급시, 19개의 현과 8개의 자치현)으로 나뉜다. 그중에 만주족 자치현 6개, 몽골족 자치현이 2개가 있다. 8개 소수민족자치현의 면적은 34,300㎢로, 전체 성의 23.3%를 차지한다. 2개의 도시는 랴오닝성 내에서 민족자치현으로 특별대우를 받는다. 향진급은 총 1,521개로 진이 636개, 향이 228개, 가도판사처가 657개이다. 랴오닝성의 성도는 선양이며, 주요 도시는 다롄, 안산, 차오양, 단둥 등이다.
동북진흥전략의 국가급 프로젝트인 「랴오닝연해경제벨트 발전계획」(이하 ‘랴오닝 발전계획’)은 ‘창지투 개발계획’에 앞서 2009년 7월 1일 국무원의 비준을 획득하였다. 랴오닝성이중국 동북지역의 유일한 출해통로를 확보한 지경학적 우위를 적극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동북3성 가운데 경제발전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성과 또한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난다. ‘랴오닝 발전계획’은 지경학적 우위를 더욱 적극 발휘할 수 있도록 연해지역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해안도로를 구축하여, 이들 연해도시를 산업벨트로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즉, 이들 연해벨트를 중심으로 대외개방을 확대하고 연해도로 및 항만 등 교통물류 인프라의 개선을 통한 적극적인 투자유치를 도모함으로써 점차 랴오닝성 내륙지역까지 단계적으로 발전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연해경제벨트’는 공간적으로 다롄(大連), 단둥(丹東), 진저우(錦州), 잉커우(營口), 판진(盤錦), 후루다오(葫蘆島) 등 여섯 개의 연해도시 관할구역을 포함하는 총면적 5만 5,600㎢이며, 해안선의 길이가 2,920㎞, 해역면적은 6만 8,000㎢에 달한다.
‘5점 1선 계획’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5점’에 해당하는 5개 공업지역은 ① 다롄 창싱다오 임항공업지구 ② 잉커우 연해산업기지 ③ 진저우 만 연해경제지구 ④ 단둥 산업단지 ⑤ 다롄 좡허화위안커우 산업단지이다. 계획의 전체 구도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우선 다롄을 동북아국제항운센터로 건설하고 동시에 연해경제벨트의 전체적인 서비스 수준과 기능을 제고하며, 나아가 선양을 축으로 연해경제벨트와 동북 내륙지역 간 상호작용을 활성화한다는 구상이다.
동북지역이나 중국 국내에 한정된 발전계획이 아니라 지경학적 우위를 활용한 대외개방의 확대를 통해 남북한, 일본, 러시아, 몽골 등 동북아국가와 교역에서 중심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 중국정부는 북중교역의 확대와 이로 인한 물동량 증가에 대비하여 신의주와 마주한 단둥시를 중심으로 내부 교통물류 인프라에 대한 대대적 개선조치는 물론이고 신의주와의 연계교통물류망 확충을 위한 노력을 전개해 왔다. 또한 단둥시 차원에서 교통물류체계를 완비한 후, 이를 북한 교통인프라와 연계하는 ‘단둥 물류운송 중심도시’ 계획을 추진해 왔다. 또한 중국정부는 인접한 지역에 투자를 유치하여 산업단지를 조성 중에 있으며, 특히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압록강도로대교의 신설과 황금평·위화도를 개발하여 북중 접경지역의 초국경 연계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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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와 경제 Society & Economy |
2014년에 랴오닝은 빈곤가정의 학비를 지원하고 공공시설을 확충하는 사회 정책을 시행하고자 한다. 교육자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00곳의 유아원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20개의 현에 500곳의 농촌학교 부설 유아원을 설립했다. 농민공 자녀, 고아, 문제아동 등 취약 아동에 대한 의무교육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앞으로는 전체 성의 8,935명 장애인 학생에게 식사, 목욕, 침구, 교복 등 생활관련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게 된다.
2013년 기준 랴오닝성의 지역총생산(GRDP)은 2조 7,080억 위안으로, 전년 대비 8.7%가 상승했다. 1인당 지역총생산(GRDP)은 6만 1,686위안이었다. 당해에 대외무역 수출입 총액은 1,142억 8천만 달러로 전년 대비 9.8%가 상승했다. 수출액은 645억 4천만 달러로 11.4% 상승했으며, 수입액은 497억 4천만 달러로 7.8%가 증가했다. 당해에 실질 이용 외자는 290억4천만 달러로 20.4% 증가했다. 동북3성 중 유일하게 바다를 접하고 있기 때문에 개혁개방에서 배제되지 않았으며, 대외무역과 외국인 투자유치를 할 수 있어 발전의 기초를 만들었다.
2013년 기준으로 산업구성을 보면, 1차 산업이 8.7%, 2차 산업이 52.7%, 3차 산업이 38.7%를 차지한다. 동북지역의 다른 성보다 농업의 비중이 낮은 반면, 공업과 서비스업 비중이 높은 만큼 이를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제시기에 가장 먼저 산업화된 지역으로 강철, 철강 등 중공업의 중심지였다. 주요 산업은 석유호학, 금석, 전자, 통신, 기계 등이다. 특히 철강, 제철, 금속절삭 등은 중국 국내에서 상위 3위 안에 든다. 또한 원자재의 주요한 기지 중의 하나로 광업, 철금속의 채석, 제련, 압연, 석유 및 천연가스 추출 등이 주요한 산업이 되고 있다.
랴오닝성은 2014년 중점개혁의 목표는 물류, 유통 등 서비스 분야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우수한 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공격적인 인수합병 등 산업구조 고도화에 역점을 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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