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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개관) Introduce |
양강도는 한반도의 북부 내륙에 위치해 있으며, 동부는 함경북도, 남부는 함경남도, 서부는 자강도, 북부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접경해 있다. 북한 동북부지방의 백두산을 발원으로 하는 두 개의 강인 압록강과 두만강 상류를 끼고 있어 양강도라 불린다. 한국전쟁 이후 신설된 양강도는 함경남도 내륙의 개마고원지역과 후창군 1부를 통합하면서 만들어졌다. 1954년 10월 행정구역 개편 시 함경남도의 혜산군·보천군·운흥군·갑산군·삼수군·신파군·풍산군·부전군 등 19개의 군, 함경북도의 백암군과 무산군의 일부, 자강도 후창군의 일부지역이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1981년에 신파군을 ‘김정숙군’으로 바꾸는 등 양강도는 김일성의 가계 우상화 작업에 의해 지명이 가장 많이 바뀐 도이며, 소위 ‘혁명사적지’, ‘혁명전적지’라는 이름의 김일성 우상화 선전 중심지이다.
면적은 약 1만 3,880㎢로, 북한 면적의 6.25%를 차지한다. 인구수는 2008년 기준으로 약 71만 9천 명인데, 이는 북한 전체 인구수의 3%에 불과한 수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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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와 환경 Geography & Environment |
양강도는 대부분이 지역이 고원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 북부 내륙지대에는 해발 1,000m 이상의 높고 평탄한 개마고원과 백무고원이 있다. 그 주변에 함경산맥, 부전령산맥, 낭림산맥 등 해발 1,000m를 넘는 높은 지역이라 ‘한반도의 지붕’이라 일컬어지기도 하는데, 그 규모가 커서 지형, 기후, 토양, 식물 등이 지역적으로 차이가 크다. 현무암 대지가 넓게 펼쳐져 있는 백무고원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면서 점차 높아지는 지형적 특색이 있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양강도는 교통조건이 매우 열악한 편이다.
한편, 양강도는 아시아 대륙과 접하고 있어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 겨울에 몹시 찬 북서풍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기온의 계절적 차이가 매우 크게 나타난다. 연평균 기온은 6℃ 안팎인데, 혜산은 3.1℃, 김형권읍은 1.7~2℃밖에 되지 않는다. 겨울에는 삼지연군 포태노동자구의 경우 최저 기온이 -43.4℃ 까지 내려간다. 눈이 쌓이는 기간은 연중 200일 정도이다. 여름의 평균 기온(7월 기준)은 17~22℃로서 비교적 높은 편이다. 갑산의 경우 여름 최고 기온이 36.2℃ 이다.
양강도는 내륙에 위치해 있어 해양의 영향을 거의 받지 못하므로 강수량 분포에서 특이점이 나타난다. 연평균 강수량은 500~600㎜로서 북한의 평균 강수량에 비해 매우 적다. 여름철인 6~8월 기간의 강수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연강수량의 60%에 달하며, 12~2월 기간의 강수량은 연강수량의 5~6%밖에 되지 않는다. 안개 발생일이 많고 일조기간이 짧으며 9월 초부터 다음해 5월 말까지 서리가 내린다.
이 지역에는 지질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다양한 지하자원이 풍부하게 묻혀 있다. 주로 흑색금속, 유색금속, 귀금속, 희유금속, 비금속, 가연성 물질 등이 분포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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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와 문화 History & Culture |
양강도 일대는 고조선 때부터 국가관리체계에 속하였고 고조선 멸망 이후 7세기 후반까지 고구려의 영토였다. 발해의 통치하에 남경 나해부에 속하여 200년 동안 존속되어 왔다. 10세기 초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후 전국을 10도로 나누었을 때 양강도 지방은 삭방도에 속해 있었다. 1391년 이후에는 이 지방을 갑주라고 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영길도의 허천현으로 있다가 갑산군으로 바뀌었다. 1413년부터 현재의 양강도지방은 함길도의 갑산부로 불리다가 함경도의 갑산부로 개칭되었다. 1416년에는 북방 여진족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갑산군의 북서부지역을 떼 내어 여연군(현재의 중강군, 김형직군 일대)을 만들고 평안도에 속하게 했다. 1446년에는 갑산의 허천강 하류에 해당하는 서부지역(현재의 삼수군, 김정숙군)을 갈라 삼수군을 내왔다. 그 후 오랫동안 이 지방은 함경도의 갑산군과 삼수군으로 있었다. 그리하여 삼수와 갑산은 양강도의 대명사로 인식되어 왔다.
양강도에는 고려시대 북방 방위의 전초기지인 괘궁정이 있고 내곡온천도 있다. 괘궁정은 혜산시 북쪽의 압록강에 인접한 절벽 위에 있다. 옛날 괘궁정은 혜산읍성의 대문으로 이용되어 왔다고 한다. 원래 혜산진성 남문의 문루로 처음에는 북융대라 했는데, 이는 북으로부터 빈번이 침입하던 여진족을 제압해 복속시킨다는 의미에서 유래하였다.
북한은 백두산을 ‘혁명의 성산’이라 하여 도처에 김일성, 김정일의 혁명사적지, 전적지를 조성해 놓았다. 백두산을 김일성의 항일투쟁 역사를 실증하기 위한 선전장으로 만듦과 동시에, 항일혁명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을 김정일의 백두산 출생 설을 믿게 하기 위해 ‘김정일혁명사적지’ 선전장을 만든 것이다. 이곳의 전시시설로는 보천보혁명박물관, 삼지연노천박물관, 삼지연혁명사적관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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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와 행정 Politics & Administration |
양강도는 함경도에 속해 있다가 1896년에 전국을 13도로 만들 때 함경남도와 함경북도 의 일부에 속해있던 지역이다. 1954년 10월 당시의 함경남도 혜산시, 운흥군, 보천군, 삼수군, 신파군, 갑산군, 풍산군, 풍서군, 부전군과 함경북도 백암군 및 자강도 후창군 등으로 양강도를 신설했다. 그 뒤 삼지연군 과 대홍단군 이 신설되고 부전군은 함경남도에 편입됐다. 1981년 8월에 신파군이 김정숙군으로, 1988년 8월에 후창군이 김형직군으로, 1990년 8월에 풍산군이 김형권군으로 각각 개칭됐다.
현재 양강도는 1개 시와 11개 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강도의 도 소재지는 혜산시이다. 혜산시는 1954년 양강도가 신설되면서 도의 소재지가 되었으나 내륙 산간이라 발전이 늦어 낙후하여 인구가 20만 명에도 못 미친다. 도시의 규모는 작으나 백두산혁명 전적지 건설의 중심으로서 정치적 중요성은 크다. 혜산시는 중심 시가지의 동쪽으로 4㎞ 일대가 중국의 창바이 조선족자치현과 마주하는 국경도시로, 양측 주민의 교류가 활발하다는 의미도 지닌다.
최근 혜산시는 북중 접경지역인 장백현-혜산시 국제관광코스를 재개통함으로 북중 관광산업발전과 무역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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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와 경제 Society & Economy |
양강도는 중앙공업과 함께 지방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기초로 지방공업이 발달해 있다. 이 지역의 주요 공업은 광업, 임업, 경공업, 연료동력공업, 금속공업, 기계공업, 화학공업, 제약공업, 건재공업 등이다. 광업은 양강도 경제의 근간이 되는 주요 산업이다. 주요 광업지구는 운흥지구, 갑산지구, 혜산지구 등이다. 주요 광산업체로는 혜산청년광산, 운흥광산, 8월광산, 용암광산 등이 있다. 임업 부문을 살펴보면 10여 개의 대규모 임산사업소와 그 산하에 60여 개의 작업소들이 있다. 통나무 생산량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삼송류, 이깔나무, 자작나무 등이며 그 주요 산지는 백암군, 운흥군, 보천군, 삼지연군, 김형권군 등의 지역이다.
경공업 부문에서는 산림자원, 산중부원, 그리고 농산물과 같은 이지방의 풍부한 원료에 기초한 종이공업, 방직공업, 식품공업, 일용품공업 등이 발달해 있다. 연료동력공업에서는 백암탄광에서 생산되는 니탄이 도내의 연료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동광 개발과 함께 금속제련소와 채굴업과 임업이 발전함에 따라 임업기계 및 광산기계 생산기지도 생겨났다.
도내 특산품으로는 김형권군의 버들제품, 보천군의 기념공예품, 그리고 백암군의 가죽제품, 혜산시의 가구제품, 운흥의 초물제품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양강도는 북한에서 논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낮은 지역이다. 농지 면적은 도 전체 면적의 6.2%밖에 되지 않는데, 그중 97.5%가 밭이다. 곡물 생산 부문에서는 기본적으로 밀, 보리, 옥수수, 벼, 콩 등을 재배하고, 그 밖에 조, 수수, 기장, 메밀, 귀밀, 피 등도 재배하고 있다.
또한 양강도는 축산업 발전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어 양, 소, 토끼 등 초식성 가축을 많이 사육하고 있다. 자연 사료 이용률이 높은 이 지역에서는 수익성이 높은 양과 생산 주기가 빠른 토끼가 사육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양강도는 2008년 기준으로 인구수가 71만 9천 명이다. 1987년에 기록했던 62만 8천 명의 인구수보다 9만 명가량이 증가했다. 2008년에 남성이 33만 9천 명, 여성이 38만 명으로 여성 성비가 남성 대비 112.3명(남성 100명당 여성 수)에 달했다. 양강도의 성별 가구 경제활동 참가율을 살펴보면, 남성이 82%, 여성이 84.6%를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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