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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개관) Introduce |
사할린주는 러시아연방의 공화국이나 주 등 광역행정단위(구성주체) 중에서 유일하게 섬으로 존재하는 지역이다. 러시아에는 본토와 분리되어 존재하는 2개 지역이 있다. 동쪽 끝에 있는 사할린주가 바다로 인해 분리된 섬지역이라면, 서쪽 끝에 있는 칼리닌그라드주는 다른 나라로 인해 분리된 월경지(exclave)이다. 소련 해체 시기, 발트 3국이 독립하면서 서쪽 끝에 있었던 칼리닌그라드주는 본토에서 분리되어 ‘섬’처럼 존재하게 되었다. 2개 지역은 본토와 분리된 ‘섬’이라는 것 외에도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완전히 러시아의 영토에 포함되어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할린주의 인구는 2014년 1월 기준 491,027명으로, 러시아의 83개 지역 중 72번째다. 러시아 극동의 9개 지역 중에서 인구 수는 다섯 번째로 많다. 인구밀도는 5.7명/1㎢이며, 주도는 사할린섬의 동남쪽에 위치한 유즈노-사할린스크로 전체 인구의 약 1/3인 181,728명(2013년 1월 기준)이 거주하고 있다. 그 외 큰 도시로는 코르사코프(33,200명), 홀름스크(29,600명), 오하(21,800명) 등이 있다. 사할린 전체 인구의 약 80%가 기후 여건이 비교적 양호한 남부의 도시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사할린주의 도시화율은 82%로 러시아 평균 도시화율인 76%보다 높다. 사할린주는 러시아 연방의 수도인 모스크바에서 10,400㎞ 떨어져 있으며, 시간대는 표준시보다 11시간 빠르고(UTC+11), 모스크바와는 7시간의 차이가 난다.
사할린과 인근 섬들은 온전한 러시아의 영토가 되기까지 역사적 굴곡이 많았다. 현재의 사할린주가 러시아 영토로 편입된 것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2년이 지난 1947년이다. 그 이전에 이곳에는 아이누족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1905년 러일전쟁 이후 남사할린은 일본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현재 사할린에 거주하고 있는 민족 중에 사할린을 대표할 만한 원주민이 없으며, 다민족사회읜 사할린을 하나로 묶을 공통의 역사적 졍험이 없다. 이러한 민족적,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사할린의 정체성을 응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문장과 주기는 사할린의 자연환경과 지리를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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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와 환경 Geography & Environment |
사할린주는 59개의 섬으로 형성되어 있다. 사할린섬, 모네론섬, 튜레니섬 및 56개의 쿠릴열도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면적은 98,100㎢로 남한보다 조금 작다. 러시아의 83개 지역 중에서 면적은 37번째이다.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사할린섬이 약 78,000㎢이며, 쿠릴열도가 약 10,500㎢이다. 사할린섬 서남쪽에 위치한 모네론섬은 면적이 30㎢ 정도이며, 사할린섬 남동쪽에 인접해 있는 튜레니섬은 길이 636m, 폭 40~90m로 매우 작다.
사할린과 쿠릴열도는 화산활동이 활발한 지진대에 위치해 있다. 특히 쿠릴열도는 9개의 활화산이 있으며, 지진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사할린은 동서로는 폭이 좁고, 남북으로는 매우 긴 섬이다. 동서의 길이 중 가장 좁은 곳은 26㎞이며, 남북으로는 무려 948㎞에 이른다. 사할린섬의 동, 서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1,000m 이상의 산들이 연결된 산맥이 형성되어있다. 서사할린 산맥은 최고 1,330m, 동사할린 산맥은 최고 1,609m에 달한다. 남북으로 길다는 것은 사할린의 북부지역이 북반구 고위도 지역에 위치해 있다는 의미다.
사할린섬은 중위도 몬순기후적 특징이 나타난다. 태평양이 큰 영향을 미치는데, 겨울철에는 대륙의 영향을 받는다. 여름에는 덥고 습하며, 겨울에는 춥고 건조하다. 쿠릴열도는 겨울철 강설량이 많고, 눈폭풍이 잦아 시계가 매우 나쁘다. 여름철에는 태평양의 영향으로 남동풍이 불고 고요한 날씨가 지속되지만, 1년에 약 120~160일 가량 안개가 낀다.
그러나 사할린섬은 위도적 특징,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위치에 따라 기후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1월 평균기온은 북서지역이 -23℃인 반면에 동남지역은 -8℃이다. 사할린섬 전체적으로 1월 최저 기온이 -25~-49℃이다. 연중 8월의 평균 기온이 가장 높은데, 북서지역은 13℃, 동남지역은 18℃이며, 최고 기온은 30~39℃ 가량이다. 기후적, 지형적 조건으로 인하여 사할린섬을 북에서 남으로 갈수록, 서에서 동으로 갈수록 거주 여건이 양호하고 경제개발 여건도 좋다. 사할린주에 있는 대부분의 대도시들이 남부지역에 분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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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와 문화 History & Culture |
러시아는 17세기 중엽에서 18세기 초에 아무르 유역을 조사하던 탐험대들이 사할린지역까지 진출하게 되면서 사할린과 쿠릴지역에 대한 탐험을 시작하였다. 초기 탐험을 거쳐 러시아인들이 사할린섬에 정착하고 마을을 형성한 것은 1860년대이다. 1867년 사할린에는 러시아 군인들이 진주해서 군사기지를 건설하였고, 최초의 농촌마을은 이때 형성되었다.
1855년~1945년의 기간은 근대적 의미에서 사할린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이 기간동안 사할린 개발은 각국의 국내 정치적 요소보다 국제 정치적 요소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 특히 사할린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다양한 조약이 체결되었다. 러시아와 일본사이의 항구적인 평화와 우호, 통상, 국경 무제에 관한 시모다조약(1855년)이 체결됨에 따라 일본은 시모다, 하코다테, 나가사키 항구를 러시아에 개항하였으나, 사실 이 조약은 러시아 측에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이러한 불평등을 개선코자 체결된 것이 상트-페테르부르크조약(1875년)이다. 이 조약에 따라 러시아는 일본 측에 쿠릴열도를 양보하고 사할린에 대한 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관계, 그리고 사할린을 둘러싼 복잡한 국제정치와 양국 간 전쟁 등으로 사할린의 주인은 몇 차례 바뀌었다. 1905년 러일전쟁 말기에 일본군이 사할린에 진주하였으며, 포츠담조약(1905년)에 따라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남사할린섬을 양도받았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패망한 뒤 남사할린지역과 쿠릴지여근 완전히 러시아(당시 소련)가 지배하게 되었다. 1947년 1월 2일에 사할린주가 설립되었고, 일본 가라후토청의 중심지였던 도요하라시를 유즈노-사할린스크로 개칭한 후 사할린주의 주도로 삼았다. 사할린섬과 쿠릴열도를 포함한 현재의 행정경계로 처음 확정된 것이 바로 1947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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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와 행정 Politics & Administration |
사할린주는 러시아연방의 다른 구성주체들과 마찬가지로 입법, 행정, 사법의 3건이 분리되어 있다. 입법 기능은 사할린 주의회가 담당하며, 행정은 사할린 주정부를 이끄는 주지사가 담당한다. 2001년 6월 28일 제정된 사할린 주 헌장에 의하면, 주지사의 임기는 5년이다. 사법부는 사할린 주 법원, 사할린주 중재법원, 지방법원, 치안재판소 및 사할린주 헌법재판소가 있다. 사할린주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주의회에서 25세 이상의 러시아 국민들 중 선출한다. 재판관 후보자들은 반드시 법학 분야의 고등교육을 이수하거나 5년 이상 법률 분야의 전문가로서 경력이 있어야 한다.
사할린주 의회는 임기 5년의 28명 의원들로 구성된다. 의회는 사할린주에서 최고의 유일한 입법권력기관이다. 한국의 일부 전문가들이나 언론사에서 러시아연방 하원을 ‘국가두마’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할린주 의회의 공식명칭도 ‘사할린주 두마’이다. 사할린주 의회 선거제도는 기본적으로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 형태이나, 일반적인 비례대표제와는 다르다. 소선거구제 원칙에 따라 14개의 선거구에서 각 1명씩 14명의 의원들을 선출하며, 나머지 14명은 단일선거구에 등록된 각 정당들의 후보자들 중에 득표수에 따라 선출된다. 일반적인 비례대표제에서처럼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원을 선출하는 게 아니라 각 정당별 등록된 후보자들에게 직접 투표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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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와 경제 Society & Economy |
사할린주는 극동 9개 지역 중 산업생산량이 가장 많으며, 러시아를 대표하는 경제성장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2011년 사할린주의 지역총생산량은5천 960억 루블로 극동지역 총생산의 23.7%이며, 제조업 생산량은 극동 전체의 35%를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연방 지역개발부의 조사에 의하면, 2012년 사할린주는 러시아의 전 지역 중에서 실물경제 성장 및 예산 수입 증가 1위 지역이다. 지역총생산량뿐만 아니라 1인당 생산량에서도 사할린주는 극동지역에서 가장 많다. 2011년 1인당 생산량을 보면, 사할린주는 약 1,203,300루블이며, 2번째는 추코트카자치구(883,400루블)이다.
사할린이 러시아에서 산업발전 수준이 높은 것은 원유가스를 비롯한 에너지 자원의 개발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사할린주의 지역총생산량은 6천 416억 루블이며, 이 중에서 광업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전체 산업생산의 61.7%인 약 3,960억 루블을 생산하였다. 그 외에 건설업은 505억 1,210만 루블(7.9%), 수산업은 131억 9,480억 루블을 생산하였다. 이처럼 원유, 가스를 비롯한 지하자원을 채굴하는 광업은 사할린의 경제성장을 선도하는 핵심적인 산업이다.
2013년 사할린의 대외교역 규모는 181억 달러로 극동지방에서 가장 많은 교역량을 보여준다. 대외교역에서 수출비중이 91.6%, 수입이 8.4%였는데, 2012년에 비해 2013년 수출 비중이 더 증가하였다. 대부분의 무역은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들과 행해지는데, 2013년 아태지역 국가들과의 교역은 전체 교역의 95%에 이른다. 2012년 사할린주의 전체 수출액은 약 177억 3,300만 달러이며, 한·중·일 3개국에 대한 수출은 약 162억 2,700만 달러로 사할린 전체 수출액의 91.5%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에서 한국에 대한 수출이 69억 3,520만 달러로 가장 많으며, 일본이 69억 2,910만 달러로 한국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사할린주의 한국과 일본으로의 수출은 극동 전체 수출액의 82.9%와 93%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사할린지역에서 생산한 가스를 한국과 일본에 대규모로 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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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과 종교 People & Religion |
2014년 현재 사할린에는 총 491,027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는 2010년 인구조사(497,973명) 때보다 6,946명이나 감소한 수치이다. 소련의 해체 이후 러시아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으며, 주요 산업지역이자 성장지역인 사할린주마저도 인구감소문제가 비켜가지 않았다. 1989년 710,242명으로 최고점에 달한 후 다시 감소하기 시작하여 2010년대에는 40만 명대로 줄어들었다. 특히, 1990년대 소련의 해체 및 체제전환기에 급격하게 인구가 감소하여 2002년의 인구는 1989년에 비해 무려 163,547명이나 감소하였다.
사할린주에는 120여 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는데, 그중에는 오랜 시간 사할린과 쿠릴열도에서 거주해 왔던 원주민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사하공화국이나 추코트카자치구 등과는 달리 사할린주 인구에서 원주민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 2010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러시아 민족은 전체인구의 82.3%인 409,789명이 거주하고 있다. 사할린지역은 총인구에서 한국 동포인 고려인의 비중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2010년 총인구의 5%인 24,993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는 사할린에서 두 번째로 많이 거주하는 민족이다.
사할린섬의 원주민인 닙히족과 아이누족이 사할린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채 1%도 되지 않는다. 2010년 기준 닙히족은 2,290명, 아이누족은 219명이 거주하고 있다. 다만, 2002년과 2010년 러시아 인구조사 항목 중 조사항목에는 ‘아이누’가 별도의 항목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일본인으로 식별된다. 2010년 기준으로 러시아 전체에 888명의 일본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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